없었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자유’ 고귀한 헌신 기억해야

‘제32회 경남보훈대상 수상자’ 선정

  • 입력 2017.06.22 20:53
  • 수정 2017.07.0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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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회 경남보훈대상 수상자
▲ 제32회 경남보훈대상 수상자

 

1. 이상원(85·창원시 진해구)씨는 1949년 3월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다. 통영상륙작전에 참가한 그는 많은 전공을 세우면서 1952년 12월 충무무공훈장을 받았고, 김일성 고지(토설산 고지) 탈환 작전에도 참가해 연대장 표1969년 3월 해병 준위로 퇴역했다.

 

2. 박영화(81·함안군 칠원읍)씨는 1936년 창녕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남편 견필수씨를 만나 결혼했다. 조국을 위해 월남전에 참전한 견씨가 큰 부상을 당해 귀국하게 됐다. 견씨는 전투 중 수류탄 파편들이 양다리에 박히면서 절단하는 수술을 했고 남은 다리가 너무 짧아 의족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씨는 참전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남편(상이등급 1급)을 50년 간 업고 다니며 치료와 재활에 힘쓰는 등 없어선 안될 손발이 돼 줬다. 게다가 40년간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해 효부로 인정받기도 했다.

 

3. 임희봉(69·함안군 가야읍)씨는 1969년 11월 해병대에 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했다. 청룡부대 대원으로 전투에 나선 임씨는 투지와 근성으로 혁혁한 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전쟁은 그에게 왼쪽 눈 실명과 오른쪽 다리 절단이라는 평생의 고통을 안겨 줬다.임씨는 실의와 좌절, 고통의 순간을 넘기며 꿋꿋하게 생활했고, 2남 1녀의 자녀를 훌륭히 키운 것은 물론이고 자신과 같은 국가유공자들의 권익 향상에도 힘을 쏟았다. 

 

4. 서금성(84·창원시 진해구)씨는 1952년 공군에 입대해 1956년 상병으로 전역했다.1994년 국민의 통일 의지와 역량 결집에 힘쓴 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6년에는 보훈 업무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가보훈처장 표창을 받았다.

 

5. 김순자(69·창원 마산회원구)씨는 1948년 8월 의령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세 살 때 6·25전쟁이 일어나 육군 전투경찰로 태백전투에 참전한 아버지를 잃었다. 김씨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한 길로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1996년부터 약 10년간 호국부녀회 경남도 초대회장을 역임하면서 호국영령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희생정신을 본받는 일에 힘을 쏟았다. 김씨는 호국부녀회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경상남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6. 황경자(72·사천시 용강동)씨는 1965년 남편 이문범씨를 만나 결혼했다. 딸을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중, 남편이 군에 입대하면서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됐다. 황씨는 둘째를 출산하고 3주도 채 안 됐을 즈음, 남편이 훈련 중 큰 부상을 입어 척추신경마비 판정을 받았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받았다. 남편은 이 때문에 전역해 귀가조치됐다. 황씨는 여섯 명 남매를 양육하고 또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이에 기운을 차린 남편은 6년간 침상에서 수기문을 써 ‘버려진 고목에 새싹이 돋으며’, ‘세등불’, ‘모든 게 내일인데’ 등 3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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